배워야 할 것을 가르치는 학교

                                                

눈물1

국민학생 하나가 울고 있다. 아이는 오늘 학교 조회 시간에 상을 받았다. 지난 달 월말고사 결과로 받은 상이다. 그러나 조금도 기뻐하지 않는다. 상장을 아버지에게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버지는 1등 상을 기다리고 있지만 아이가 받은 상은 2등 상이다. 퇴근하신 아버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얼마나 혼날까 생각하면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퇴근해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아이의 예상대로 크게 실망한 표정을 보인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공부를 게을리한 벌을 받아야 한다며 왕복 4킬로미터 되는 길을 뛰어갔다 오게 한다. 차도 잘 다니지 않는 어두컴컴한 시골길을, 가로등 하나 없는 흙길을 달리며 아이는 또 눈물을 흘린다.

그 아이는 바로 나였다.

 

아버지는 좋은 분이셨다. 가족을 무척 사랑하셨고, 친척과 이웃들에게도 늘 인자하셔서 어려운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내 연필을 하나하나 칼로 깎아 필통에 넣어주셨고, 새 학기가 되면 새 교과서를 달력 종이로 예쁘게 싸주셨다. 그러나 내 성적에는 너무도 엄격하셨다. 1등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말씀을 끊임없이 들었다. 고졸 학력의 아버지는 직장에서 받는 학력 차별을 견디다 못해 회사를 박차고 나와 사업을 시작했다. 나와 동생에게 좋은 대학에 가야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공부해라, 1등해라, 여자도 대학은 꼭 가야 한다.

어릴 때는 아버지를 미워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아버지는 당신이 겪은 아픔이 자식들에게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신 것뿐이다. 아버지도 피해자였다. 아버지는 열심히 일했고, 자신이 일하는 분야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고, 책임감 있는 사원이었지만,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보다 월급도 적고 승진도 더뎠다. 자식들까지 그런 아픔을 겪는 것은 차마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학력 차별을 당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피나는 노력은 여전하다. 아니,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스펙 쌓기'라는 말이 초등학교 때부터 적용되는 세상이다. 그러나 나는 내 아이들에게 학력 차별에서 살아남는 법, 다른 사람을 누르고 이기는 법을 가르치고 싶지 않다. 아니, 사실 그런 방법은 잘 모른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학력 차별 없는 세상을 열어주고 싶다.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와 일을 하고, 즐겁게 일해 버는 돈으로 적당히 행복하게 살고, 학력과 직업으로 사람의 위아래를 정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재미있게 어울리며 살게 하고 싶다.

 

눈물2

초등학생 하나가 울고 있다. 작은 손으로 자꾸만 눈물을 닦으며 학교에서 오늘 있던 일을 얘기하고 있다. 아이는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손바닥을 맞았다고 한다. 얘기를 들은 엄나는 네가 뭘 잘못했겠지, 한다. 아이는 억울한 표정으로 수학 문제를 틀렸기 때문에 맞은 것이라고 말한다. 한 문제 틀린 친구는 한 대 맞고, 두 문제 틀린 친구는 두 대를 맞았다고 한다. 아이는 일곱 문제를 틀려 일곱 대를 맞았다. 엄마는 눈물을 닦던 아이의 손을 펴 보고 가슴으로 눈물을 흘린다. 손바닥이 빨갛게 부어 있는 아이에게 말한다. 문제를 틀린 건 잘못이 아니야. 문제를 틀렸다고 학생을 때린 선생님이 잘못한 거야.

그 아이는 바로 내 아들이었다.

 

선생님은 나이가 쉰을 넘은 여자분이었다. 선생님식으로 굳어진 교육 방식을 바꿀 수 없었다고, 작년과 재작년에 그 선생님 담임 반이던 아이 엄마들이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모르는 것을 배우러 학교에 가는 것이다. 물론 한 선생님이 감당하기에는 학급당 학생 수가 너무 많은, 열악한 교육 환경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수학 문제를 틀리면 맞아야 한다니, 기가 막혔다.

지금은 체벌에 반대하지만, 그때 나는 부분적 체벌에는 동의했다.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거나 수업 진행에 심각한 방해를 하는 행동에는 경고를 주는 체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교과 내뇽을 이해못하는 것은 벌을 받을 일이 아니다. 틀린 문제 수만큼 맞아야 한다는 것은 아마도 '맞기 싫으면 공부해 오라'는 뜻이었겠지. 맞기 싫어 뭔가 해야 한다면 그것은 소나 말과 같다. 맞기 싫어서 밭 갈고, 맞기 싫어서 달려야 하는 소나 말.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 배우고 익히는 것은 공자님도 말씀하셨다시피 즐거운 일이다. 맞기 싫어서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다.

나는 우리 학교가 학생이 모르는 것을 알려주는 학교, 알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학교, 아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깨닫게 도와주는 학교,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우치게 해주는 학교, 교과 내용을 학원에서 다 배웠으리라 믿고 대충 가르치는 일이 없는 학교, 학생을 소나 말이 아니라 인격체로 대우하는 학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의 눈물을 보고.

 

한숨

중 3 아이는 예술 고등학교에 떨어졌다. 아이의 부모는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한두 학기 다니다가 예술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간절히 원하던 학교 입학에 실패해 낙담하고 있는 아이를 설득한다. 아이에게는 예술 고등학교밖에 없었고, 그 밖의 길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밖에 없게 된 아이는 숨 막히는 '고딩'생활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다.

아이는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는 학생들 모습, 그 속에 자신이 들어가 함께 앉아 있다는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온다고 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오로지 공부. 아침 먹고 공부, 점심 먹고 공부, 저녁 먹고 공부라니, 무슨 공부 기계냐고 했다. 아이는 결국 고등학교에 가지 않기로 했다. 감옥 같은 교실에서,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 공부를 하기 싫어 스스로 결정한 것이다. 아이는 다음해 8월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우여곡절 끝에 직업전문학교에 진학하게 됐다.

아이는 내 딸이다.

딸은 어릴 때부터 좋고 싫은 것이 분명했다. 책 읽는 것, 손으로 뭔가 만드는 것은 좋아하지만 살면서 한 번도 쓸 것 같지 않은 어려운 수학 공부는 싫어했다. 디자인, 사진 찍는 일, 음식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했다. 하지만 아이가 다닌 학교에서는 그런 직업이 자기 적성에 맞는지, 그 직업을 갖기 위해서 어떤 준비와 노력이 필요한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것은 개인의 몫이었다.

어릴 때부터 대안 학교와 선진국의 교육에 관심이 많던 딸과 나. 교육방송에서 나오는 대한 학교나 홈스쿨링 얘기, 외국의 중,고등학교 현실을 보며 많이도 부러워했다. 특히 어릴 때부터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경험하게 하고, 모든 직업을 다 귀하게 여기는 선진국의 교육 현장 이야기를 접하면 그 나라로 이민 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스웨덴 청소년들이 농업학교에서 소 키우는 법을 실습으로 배우는 것을 보면서 '한국은 언제쯤 저런 공부를 대안 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에서 할 수 있게 될까' 생각하며 그려지지 않는 미래 모습에 한숨을 쉬었다.

 

아이들의 꿈

나는 초등학생, 중학생들과 책 읽고 글 쓰는 공부를 한다. 일명 '논술쌤'이다(초등학생에게 논술이라니 가당키나 한지.....)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은 늘 즐겁다.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 나오기를 조급하게 기다리는 부모님만 안 계시다면.

내가 만나고 있는 초등학생 중 많은 남자 아이들의 꿈은 프로 게이머가 되는 것이다. 어떤 아이는 엄마가 적극 권한다고도 한다. 아이들은 아직 모르나 보다. 자신이 왜 게임에 매달리게 되는지. 그 게임이 직업이 되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일이 될지. 학교 수업 끝나면 방과 후 수업을 한두 개 하고, 바로 피아노 학원으로 가서 피아노 한 시간치고, 태권도 학원 갔다가 집으로 달려가 학습지 선생님을 만나고, 또 영어 학원에 가야 하는 아이들. 그리하여 쌓인 스트레스를 손쉽게 풀 수 있는 길이 컴퓨터 게임 뿐인 것을, 게임을 정말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좋아하는 일을 아직 찾지 못한 것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나 보다. 그 좋아하는 게임을 직업으로 하게 되면, 엄마에게 애걸해서 하루에 한 시간 겨우하는 게임만큼 즐겁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많은 아이들이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은 자신의 적성이나 능력이 아니라 수입이다. 돈을 많이 벌면 그 돈을 어떻게 굴려서 불릴 것인가 생각해놓은 아이도 있다. 이런 아이들 뒤에는 돈이 최고라고 가르치는 부모가 있다. 성적이 오르면, 학교에서 상을 받으면, 책 한 권 읽으면 돈을 준다. 아이 생일에 정성껏 음식을 차려 친구들을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몇 만 원 쥐여 주고 친구들과 맛있는 것 먹고 재미있게 놀다 오라고 한다. 돈을 최고로 여기는 마음은 바로 부모가 아이들에게 은연중에 가르친 것이다. 세상에는 많고 많은 가치가 있는데 어쩌다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됐을까.

 

녹색당과 꾸는 꿈

책 모임을 통해 초록실천단을 알게 됐다. 초록실천단이 말하는 초록의 가치는 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과 꼭 닮아 있었다. 채식, 나눔, 환경, 생태, 마을..... 그런데 그 사람들이 녹색당을 함께 만들고 있다. 녹색당이 꿈꾸는 세상은 아마도 지구상의, 아니 우주 안의 뭇 생명들이 모두 눈을 맞추고, 손을 맞잡고, 소외되는 이(사람과 동식물, 땅과 물과 하늘) 없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일 것이다. 이런 세상을 만들려는 녹색당이라면 틀림 없이 학교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도 기꺼이 내 온 마음에 녹색 물을 들이기로 했다.

학교는 배우고 가르치는 곳이다. 제발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지 말자. 공부 잘하는 게 최고라고 가르치지 말자. 1등이 되기 위해 친구가 나보다 못하길 바라는 마음이 생기게 하지 말자. 직업 선택의 우선 기준이 돈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지 말자. 교과서나 문제집 말고 다른 것에 관심 가지면 안 된다고 가르치지 말자.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빛깔과 향기가 다른 꽃이라고 가르치자. 잘하는 친구와 못하는 친구가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인지 가르치자. 돈보다 중요한 것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주위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과 현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치자. 녹색 세상의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정말로 배워야 할 것을 가르치자.  (김정원, 녹색당)

 

<녹색당선언 102~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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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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