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를 보다.

사람일지 2009. 5. 21. 23:50
지난 해 '렛미인'을 보고 처음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 박찬욱의 <박쥐>.
그러고 보니 두 영화 모두 뱀파이어가 주인공이다.

감상평이 극과 극을 달린다던가, 송강호의 성기 노출, 김옥빈의 전라 베드신 따위 사전지식 일부는 머릿속에 넣고 봤다. 영화가 진도를 나갈 수록 박찬욱의 전작들이 떠올랐다.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에서 봤던 잔혹하고 선명한 복수와 희생, 구원의 이미지들과 겹쳤다.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영화는 영화의 문법으로 읽어야 할 터이다. 논리적으로 분석하거나 짧고 단순한 시나 단편소설에서 적용해야 할 성급한 비유의 공식을 찾으려 해선 여러가지를 놓칠 수 있다. '너무 많이 의미부여를 하지 마시라'는 TV연예프로에 비췄던 박찬욱의 코멘트도 떠올랐다.

그럼에도, 성급하게 내가 마음이 무겁고 불편했던 이유를 따져보자면, 극중 송강호가 분한 신부의 모습이 구원자를 자처하는 많은 어줍잖은 '지도자'의 은유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부는 민중을 위하려 늘 생각함은 물론, 나아가 민중의 고통을 제것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려 기꺼이 생체실험에 자원하고 그 결과 바이러스에 감염되며 뱀파이어로 변해버리게 된다.
민중을 섬기려 온힘을 다해 노력하는 신부. 불행히도 스스로의 욕망을 직면하지도 못하는 영혼의 소유자이다. 자살을 꿈꾸는 동료 수녀의 고해성사에 참으로 친절하고 걸걸하게 자상한 조언을 해주지만 돌아오는 것은 핀잔뿐이고, 가장 자연스런 욕구인 성욕을 참으려 자해까지 감행한다.
뱀파이어가 된 자신을 인정하기 어려워 온갖 고상한 체를 하기도 한다. 코마상태 환자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수준으로 피를 받아 먹기, 자살을 원하는 클라이어언트들을 자살로 유도하여 그 피를 빼 먹기, 요즘 유행하는 자살사이트를 운영하여 조달하기!!! 푸하하하핫!
김옥빈은 그런 송강호의 가식을 노력할 필요조차 없이 직관으로 꿰뚫어본다. 왜냐하면 그녀는 '부끄러움타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랜동안 견뎌왔던 사랑의 결핍과 갈증에 솔직하고, 그것을 충족했을 때 내보인 감정의 발산도 부끄러움이 없다.
너무 오래 오줌을 참았다 배설하면 성기 끄트머리에 드는 약간 아픈듯한 느낌이 더 배설의 쾌감을 상승시켜 주는 것처럼, 병원에서 송강호와 제대로 가진 첫번째 섹스에서 그의 표정연기와 대사는 그 갈증의 해갈을 속 시원하게 보여준다.

구원의 시도에 실패하고 노골적으로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죽을 애를 쓰는 뱀파이어 신부와, 그런 신부를 사랑해 뱀파이어가 되어버린, 남편을 죽인 여자의 결말은 당연히 뻔할 것이다.

영화의 마무리에서 다시 가슴이 무거워지고 검붉은 피가 떡져 굳은 것처럼 찝찝한 느낌이 또 들었다.
버려진 아이로 인생을 시작해 송강호를 만나기까지 '강아지처럼' 취급당함 살아온 김옥빈은 그렇다치고, 송강호의 출신성분은 결코 지식인스럽거나 선지자스럽지 않았던 것이다. 역시 어려서 고아원에 버려진, 불우한 인민의 자식 아니었나.
끝끝내 죽음을 면하는 김해숙의 생존의 의미는 또 무언가. 자기 자식을 맹목적으로 사랑한 죄 밖에는 없었다고 항변할 만한, 드물지 않게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적당히 이기적이고 제 가족만알고, 무례하고 사나운 그런여자, 시어머니 김해숙. 김옥빈을 평생 강아지처럼 밥을 주고, 걷어차고 주먹질을 하며 데리고 산 여자.
끝내는 이런자들만이 살아남는 세상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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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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