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가을, 평양에 갔었다. 꼭 요맘때였을 것이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코로 냄새 맡아지는 모든 것이 놀랍고 흥분되었던 시간이었다.
말로만 듣던 집체공연 '아리랑'의 위용도 감동적이었고, 2박 3일간 북한 사람들과 함께 다니며 나눈 정도 마음 깊이 남았다. 또한 잊을 수 없었던 것은 평양 시내 관광이었다.
차창밖 풍경을 즐겨 눈에 담는 평소 습관 탓인가, 미리 예정된 관광지를 빼고는 버스 투어만으로 감읍해야했던 평양 도심 관광길에서 내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자본주의 서울이나 인천과는 완전히 다른 '물리적 도시공간'으로서 평양의 모습이었다.
평양은, 경쟁과 소비와 욕망이 점철된 자본주의 그 자체인 서울이 아니었다. 그 도시속에서 나고 자라 뼛속깊이 도시의 내음을 체화하고 사는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정경이 몇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가로 양쪽으로 도열한 고층 아파트 숲. 고층 아파트 수야 남쪽에 훨씬 많겠지만 평양 시내에 있는 아파트 건물들은 제각기 모양이 달랐다. 틀로 찍어내듯 전국 어딜가나 꼭같은 평면과 꼭같은 외양을 가진 아파트가 아니었다. 층수도 달랐고, 건물을 배치한 방향도, 모양도 모두 달랐다. 이 도시를 설계한 이들이 의도적으로 변화를 준 것이 분명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산품을 만들듯 같은 디자인의 아파트가 대량으로 반복해서 지어지는 이유는 그것이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설계안으로 규격화된 자재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그 도시경관을 늘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를 세심하게 배려한 미학따위는 발붙일 곳이 없다.

또 하나 인상깊었던 풍경. 대동강변의 아름다운 공원들이다. 강변에는 수양버들이 하늘거리고 거리 사이사이 공지마다 조성된 숲에는 아이들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무슨 수도가 이럴수가 있지? 이래도 되는 거야? 싶었다.
북한 최대의 도시 평양에는 공원만 많은 것이 아니다. 조금만 시가지를 벗어나면 어딜가든 농지와 쉽게 만난다. 평양시내는 사실은 아주 면적이 좁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평양에 다녀온 직후 신문을 보다 이런 생각을 나 혼자만 한게 아니란 것을 알았다. 순천향대 건축과 양상현 교수 또한 비슷한 때에 평양에 다녀온 소감을 신문에 실었다. http://www.hani.co.kr/kisa/section-paperspcl/book/2005/11/000000000200511031806044.html

이듬해 금강산에 다녀왔지만, 금강산에서 제한적으로 접할 수 있었던 건축물과 시설은 현대그룹 자본이 투입되어 만든 것들이라 사실 그닥 감흥이 없었다.

그러다 며칠 전에 이 책을 만났다.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
미국에서 설계일을 하고 있는 저자는 그의 유학시절 석사논문의 주제로 평양건축을 다루었다고 한다. 그리고 직장생활 틈틈히 그 주제에 연구를 더해 책으로 펴낸 것이 바로 이것.

이 책의 부제는 '평양 도시 공간에 대한 또 다른 시각:1953-2011'이다. 전후 김일성 주석이 평양을 세계적인 '사회주의 도시의 모범'으로 건설하려 했고 그 의도는 일정하게 성공했다 할 수 있다. 모범이라니, 그럼 사회주의가 우리가 따라배워야 할 모범이란 말이냐? 따위의 저열한 메카시즘적, 단세포 사고에서 벗어나 사실을 차분히 바라보면 사실이 그렇다는 말이다.
문외한인 내가 평양건축을 보며 느꼈던 일종의 감동, 전문가가 또한 살펴본 탄복이 다 이유가 있었다. 현대 사회주의의 도시 평양은 자본주의 도시 서울, 인천과는 달리 무정부적인 막개발과는 전혀 인연이 없다. 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던 1950년대 평양. 오히려 백지에서 새로운 사회의 물적 구조인 도시를 설계할 수 있었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했다.
평양은 새 나라의 심장을 본때있게 건설하겠다는 의지로 불타올랐던 젊은 혁명가 김일성 주석과, 그의 의도를 정확히 읽고 충실하고도 솜씨있게 그 의지를 현실로 하나씩 옮겨냈던 젊은 건축가 김정희가 함께 만들어낸 일종의 작품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1953년 마스터 플랜'이다. 평양은 그 후 50여년 동안 다소의 변형은 있었지만 그 마스터 플랜을 일관되게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속에서 건설되었다.

마스터 플랜에 어떤 방향성이 담겨있는지를 살펴보면, 왜 오늘과 같은, 자본주의 도시에 익숙한 사람의 눈으로는 당췌 이해할 수 없는 모습으로 건설되었는지를 읽을 수 있겠다.

이상적 사회주의 도시로 건설하기 위해 1953년 마스터플랜에 설정된 평양의 방향축은 다음의 세가지이다.

1, 생산의 도시.
대도시의 높은 지대를 견디지 못하고 생산시설은 도시 외곽으로 쫓겨가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사회주의 도시 설계자들은 생산 시설은 정주공간의 가까운 곳에 위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시 곳곳에 경공업 시설과 작업장, 편의 시설 들을 함께 배치하는 '마이크로 디스트릭트'개념을 도입해 건설한 것이다.
실제 평양의 많은 시민들은 걸어서 작업장으로 출퇴근하며 아이를 맏기고,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병원에 간다. 소구역이 자생적인 주구단위로 독립하는데 목표를 두고 도시를 설계한 초기 도시계획가들의 의도였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위의 '마이크로 디스트릭트'개념은 오늘날 자본주의 서울에서 '마을만들기'를 주창하는 이들의 문제의식과 일맥상통하는데가 있다.

2. 녹지의 도시.
초창기 자본주의의 극심한 모순과 폐해가 분출되어 나타났던 공간은 다름아닌 도시였다. 나쁜 공기과 오염된 식수,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노동자들. 엥겔스를 비롯한 사회주의의 창시자들의 꿈꾸었던 이상적인 도시에는 이러한 문제공간의 대안이 들어있게 마련이었다. 20세기 초반 전 세계 건축계를 풍미했던 '전원도시'모델이 여기에 날개를 달았고, 여기에 더해 도시와 농촌간의 격차를 해소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도시속 녹지 배치가 이루어졌다.
평양은 대동강을 중심축으로 하여 자연지형을 그대로 반영하여 유원지와 공원 시설을 곳곳에 만들었다.

3. 상징의 도시.
초기 사회주의 도시계획 이론에는 없었으나,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들의 등장과 이들이 이끄는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탄생은, 이들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군중동원과 일치를 가능하게 할 이데올로기 선전공간을 필요로 했다. 광장과 기념비 건설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저자는 사회주의 북한이 결국은 자본주의 체제와 조우하고 변형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측속에서 위 세가지 공간으로서의 평양이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 것인지까지 그림을 그리며 책을 마감한다.

의도야 무엇이건간에, 사회주의 북한의 심장 평양,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하려던 많은 이들의 노력이 응축된 물적 결과물로서의 도시 평양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연구할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한다는 점이 이 책이 가진 소중한 미덕이다.








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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