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건축 2011. 10. 24. 22:49

가구를 만들 목재의 품질로 치자면 원목이 최고지만, 내가 일하며 접해볼 수 있는 목재가운데 으뜸은 자작나무 합판이다.
여름에 현장에서 쓰고 남은 15mm두께의 자작나무 합판 자투리가 있었다. 새하얀 수피의 색으로 이름난 나무답게 자작나무는 흰빛이 도는 밝은 베이지색이 곱다. 합판 온장 반토막이나 되어서 요긴하게 쓰겠거니 했는데, 지난 여름 퍼부었던 비로 창고에 물이 들어차며 아랫도리가 검게 곰팡이가 슬어버렸다. 낭패였다.
심하게 변한 쪽만 잘라내더라도 그놈을 가지고 공사에 써먹기는 틀려버렸다. 마침 큰애 방 책장이 부족하던 터라 성한 부분을 재단하고 못질해서 손수 만들어보기로 마음먹었다.

9월부터 현장에 다니는 틈틈히 짬을 내서 근 한달에 걸쳐 겨우 완성했다.
손연장으로 내가 직접 시도했다면 가장 어려웠을 재단은 목공 이부장께 부탁드려 손쉽게 해결했지만, 조립하고 칠하는 일이 단순해 보이는 외양과는 다르게 쉽지만은 않았다.

충전식 전동드라이버로 50mm피스를 박아 옆판과 아랫판을 고정시켰는데, 이게 마음먹은대로 안되었다.
그러고보니 시중에서 파는 MDF싸구려 책상을 살펴보니 무식하게 피스질을 한게 아니라 윗장에는 미리 못자리에 드릴로 구멍을 내놓은 다음 피스를 주어 고정을 시켰다. 그렇구나..
재단이야 거의 오차가 없었지만 아랫판과 옆판이 곳곳에 새가 떠버리고 말았다. 



페인트칠도 어려움의 연속. 자작나무 고운 나뭇결무늬를 살리려 가구용 수성페인트를 물에 희석하여 붓칠을 한 다음, 천으로 닦아내는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허사장님이 작업하는 모습을 직접 본 적도 있고 해서 쉽게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 유명한 값비싼 던 에드워드 페인트 남은 걸 칠하려 희석비율을 알아보려고 홈페이지를 뒤졌더니 원액그대로 칠하거나 물을 아주 조금만 섞어 쓰라고 나와있었다. 그대로 따라 했다. 웬걸, 그렇게 칠했다가는 락카칠하듯이 완전히 색을 입히는 결과가 나올것 같았다. 대충 초벌칠을 하고 며칠있다가 물을 아주 많이 섞어 붓대신 스폰지로 살살 눌러가며 칠을 입힌 다음, 낡아서 버리게 된 내 빤스로 문질러 마무리지었다.

대체로 색도 나오고 무늬결도 죽지는 않았지만, 곳곳에 페인트 떡이 지고 말았다.



어쨌거나, 처음으로 내 손으로 만든 가구다. 아이가 흡족해해서 다행이었다.

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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