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란, 2007-8-25

사람일지 2007. 9. 25.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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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떡잎식물 백합목 수선화과의 상록 여러해살이풀.

한국(제주),열대 아시아 등지 분포. 온난한 해안의 모래땅 서식.

꽃은 7∼9월에 피고 꽃대는 높이 50∼80cm이며 산형꽃차례[傘形花序]에 2개의 커다란 포(苞)와 많은 꽃이 달린다. 꽃 사이에 선 모양의 포가 있다. 꽃은 백색이고 향기가 있으며 6개의 화피 조각과 수술이 있고 1개의 암술이 있다. 열매는 삭과(蒴果)너비가 각각 2∼2.5cm이다.

잎은 진통 ·해독 ·소종 등에 효능이)로 둥글며 길이와 있어 두통 ·관절통 등에 사용한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자생하는 군락지인 제주 토끼섬은 천연기념물1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


아하. 왜 이제야 백과사전을 찾아본 것일까. 몇가지 의문이 풀린다.


1월, 제주의원실 수련회 장소가 성산이었다. 예정된 일정을 마친 다음 성산일출봉에 올라갔다 내려오며 문주란 한뿌리를 5천원 주고 샀다. 수선화 5뿌린가와 함께. 노점 할망한테 수선화는 뿌리당 2천원, 문주란은 5천원 주고 샀다.

제주의 1월에 수선화가 얼마나 이쁘고 기특하게 꽃을 피우는지를 그 얼마전 이중섭 미술관에 갔다가 본적이 있어서, 수선화를 사는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문제는 문주란이었다. 가격도 가격이고, 약간 둔해 보이는 몸피의 문주란 뿌리가 '5년 생이니까 여름에 꽃이 핀다'는 할망의 말이 영 미덥지 않기도 했던 것이다.


한창 돌을 들어내고 일구고 있던 집 앞 텃밭 한켠에 삽질을 해서 문주란을 심었다. 밭 가장자리에는 수선화를 심었다. 1-2월, 서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드센 제주바람에 하늘하늘 비실거리는 수선화는 그러려니 싶었다. 그런데 3주가 지나고 4주가 지나도록 문주란이 제자리를 잡지 못했다. 열심히 물을 주면 너무 물을 많이 주어 뿌리를 썩혀서 그런가 싶기도 했고, 전에 살던 집주인이 집 앞 마당 전체에 뿌려 놓은 마사토 때문에 이러나 싶기도 해서 몇 주가 더 지난 다음 화분에 옮겨 심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한달쯤, 문주란은 거의 고사 직전상태로 된 것 처럼 보였다. 밑둥에서 뻗어나온 이파리의 80%는 썩어 문드러졌고, 회생의 가능성은 없어보였다.

그런데, 다른 곳에 조경으로 심어진 문주란도 똑 그 상태더라. 용기를 얻은 덕준이 형이 썩은 이파리 따주면 살아날 거라고, 텃밭 검질할 때마다 틈틈히 죽은 잎을 뜯어주었다.


다행히, 봄을 지내며 새 이파리들이 다시 피어올랐다. 안도했다.

그리고, 이 놈의 존재를 잊은 채 여름을 거의 다 보낸 즈음,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어제 아침에 우연히 활짝 꽃을 피워낸 모습을 본 것이다.

네이버 검색을 해 보니, 이 정도로 꽃이 핀 상태는 완전히 벌어질대로 벌어진 상태였다. 왜 여태 못보았을까.

그 놀라운 생명의 힘에 감격스러웠고, 사랑스럽고, 의심하고 관심을 거두었던 내가 미안했다.

새삼 성산포의 노점 할망에게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의심의 정체, 네이버 백과사전을 보고 또 풀었다.

문주란 자생지가 성산포 바로 옆의 토끼섬,. 우리가 제대로 산 거였다.

꽃이 여름에, 7-9월에 핀다는 걸 잠시 잊었었다.

고운 황토나 대정벌판의 질좋은 검은 흙이 아니라 못 살아나는 게 아닐까 이 놈의 자생력을 의심했지만, 원래 이 놈은 모래흙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존재였다.


무지해서 의심했던 거였다. 무지한데 믿지도 않았던 거다.

내 무지와 의심과 불신따위는 아랑곳없이 다음에 피어날 새 생명의 씨앗을 고스란히 속에 품고 무관심한 두 계절을 견뎌왔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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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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