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연휴 기간 중인데도 밀린 업무 때문에 출근했다. 사회복지사란 연말이면 몹시도 일이 많은 직종이다. 보조금 정산서류 준비하랴, 자선 행사 치르랴, 신년 되자마자 발송해야 할 기부금영수증 만들랴! 월급도 많지 않은 이 직업이 그래도 마음에 드는 건, 나 아닌 주위를 돌아보며 나눌 줄 아는 평범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결을 종종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1. 나눔은 기쁨! 나눔과함께는 해마다 12월이면 ‘겨울나기’사업을 한다. 봄 가을에 열었던 ‘행복한부평 나눔장터’ 수익금으로 내복이나 난방기구 같은 월동용품을 사서 인근에 홀로 사는 어르신들께 전해드리는 사업이다. 100여벌 쟁여놓은 내복 한 상자 한 상자에는 많은 이들의 정성이 깃들어있다. 장터에 참가한 어린이들과 가족 수백 명이 한 푼 두 푼 모은 거라 액수를 떠나 참으로 값진 물건이다.
올해는 이 사업에 의미가 더해졌다. 근처 중학교 여학생들이 찾아와 어른들께 내복 선물과 함께 드릴 연하장을 직접 만들어준 것이다. 늘 베풂만 받아온 아이들에게 남을 위해 봉사할 기회를 마련해주고자 했던 그 학교 선생님의 주선으로 카드만들기 자원봉사활동이 마련되었다. 어른들처럼 무게 잡지도, 거창한 의미부여도 하지 않고 그야말로 재미있게 ‘나눔을 즐기는’아이들이 참 예뻤다. 돈은 돌고 돌아 이윤을 낳지만, 나눔은 얼기설기 이어져 사랑과 기쁨을 낳는다.

#2. 나눔은 양보 청천동 소재 (주)비에이치는 매년 나눔과함께로 독거노인 사랑의 도시락 값 일부를 후원해오고 있는 기업이다. 이 달 초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직원 연말 송년회를 취소하는 대신 그 돈을 독거노인들을 위해 쓰고 싶다고. 그리고 직원 전체가 시간을 내서 작은 일이라도 몸으로 거들고 싶다고. 회사에서 돈을 내 연탄과 쌀을 사고, 난방비 지원 증서를 만들어 전해드리기로 했다. 대상은 부평에서 가장 주거여건이 열악한 십정동 거주 홀몸어르신. 전달 행사일은 하필이면 올해 가장 추운 날이었던 18일!
날씨까지 칼날처럼 차가워 연탄을 나르며 곱은 손 후후 부는 입김이, 주고받는 훈기가 더 따뜻했던 날이었다. 나눔은 내가 누릴 즐거움을 조금 양보하여 만드는 따스함이다.

#3. 개미기부자의 힘 경기가 계속 나빠 후원자가 줄지 않느냐고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있다.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고액 기부자는 줄었지만 오히려 소액후원자는 늘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 여름, 사랑의 도시락 기금마련을 위해 Daum 아고라 모금방에 청원 글을 올렸다. 휠체어타고 폐지를 줍는 어르신의 사연을 절절하게 글과 사진으로 담은 담당직원의 진정이 네티즌들의 심금을 울렸던 것일까. 20일 만에 500만원이 넘는 돈이 모아졌다. 클릭 한번으로 후원금이 핸드폰요금에 부과되는 일회성 기부 외에도, 부러 나눔과함께 홈페이지를 찾아 정기 후원자로 등록을 해 주신 분들도 적지 않았다. 후원금만으로도 눈물겹게 고마운데, 응원 댓글을 보면서는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내용이 대개 이랬으니. “이것밖에 도움을 못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작지만 서로 기댈 수 있어 안도하게 만드는 나눔의 힘!

#4. 그런데 과연 개미의 힘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런 나눔이 도움을 주고받는 우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당장의 어려운 소용을 해결해 주며, 그럼으로써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된다... 는 말은, 꼭 그 말 만큼뿐이 아닐까. 결국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권세를 가진 것은 희망의 근거를 전혀 다른 곳에서 찾고 저 홀로 배불리 잘 살 수 있는 무리들이 아닐까, 글을 마감하며 새삼 고개를 쳐드는 삐딱한 생각이다.
올해 읽은 『예수전 (김규항 저, 돌베개)』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나눔에 대한 내 생각을 다시금 가다듬게 한다. 예수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 오천 명을 먹였다는 이 에피소드는 나눔의 참된 의미를 깨우치는 비유라는 것이 글쓴이의 설명이다. 아무리 모자라는 것이라도 함께 나눌 때 모두가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는 나눔의 참뜻.
설명은 이어진다. “이 에피소드는 ‘나와 내 식구가 먹고 남는 것으로 불쌍한 사람을 돕는 행위가 나눔’이라는 알량한 생각이 얼마나 가식적인지를 매섭게 꾸짖는다”, “적선은 굶어죽는 사람을 구하지 못하며, 나눔이란 그 고통스런 현실을 만들어내는 불의한 사회에 대한 분노를 함께 갖추어야 한다”, “나눔은 적선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 세상을 ‘나눔의 체제’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휴일 오후 늦도록 사무실 창밖에는 흰 눈이 계속 내리고 있다. 눈이 좋은 건 세상의 모든 곳을 가리지 않고 하얗게 덮어주기 때문이다. 참된 나눔은 눈과 같이, 저 스스로 소담스럽게 하얗게 빛날 뿐 아니라 소리 없이 세상을 바꾸는 데까지 미쳐야 하지 않을까.

Posted by 나무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