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혹은 위선

일기 2008. 4. 1. 06:24
내가 싫다.
어정쩡한 내가
말이 느린 내가
매사 분명하지 않은 내가
머릿속으로는 잔대가리 팽팽 돌리면서
순박한 척, 착해보이는 미소 띠는게 워낙 오래 습관이 되어놓아서, 순진한 척
하는 내가
술자리에서 조는 내가
단 한번도 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절망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본적이 없어
걱정과 염려로 잠못이룬 밤 한번 없는 내가
적절한 때 비판하지 않는 내가
상냥한 - 영리하지 못한, 그래서 때때로 이득을 보는 - 말투로
무수히 약속을 어기고도
대충 눙치는 내가
때때로 섹스에 대한 갈망을 견딜 수 없어 하는 내가
내 새끼의 미래의 밥그릇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걱정과 관심이 없는 내가
그 새끼의 어미에 대해 최소한의 책임, 저버릴 상상으로, 그 상상 가볍게 나누며
술자리에서 음탕하게 낄낄거리는 내 더러움이
세상 모든 존재에 대해 두루 관심많은 척
풀과 냄새와 새소리에 민감한 척
하지만
달려가야 하는 목표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느릿느릿 두리번거릴 여유가 내게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치스럽게 날 포장하고
결국은 자신마저도 속이고 있는 내가

견딜 수 없이 싫다.
나도 모르겠다.
어디까지 진실을 말하고 있고
어디까지 거짓을 포장하고 있고
무엇을 사랑하는지
나 자신을 사랑하는지? - 이건 진짜 모르겠다 -

말하기 싫다
해묵은 오해와 미움으로
원망하는 마음 간직한채
적당히 가까운 척 한 공간에서 생활하면서도
아무런 불편함 못느끼는
냉랭한 내가 싫다
온 존재를 걸고, 그이들과 소통하려 최선을 다해 부딪히기보다는
주저앉거나, 절망하거나
 - 결국, Michel의 적절한 지적처럼, '불쌍한 척'하는 특기를 살려
혹은 원망하거나
하며
분위기 가라앉을 때까지 한껏 도망쳐 버리는
내가
다시 생각해봐도 싫다.

이렇게 싫어도
뭘 다시 해보리라
진지하게, 정말로 진지하게
성찰의 끝까지 갈 생각이 사실은 없는
이것도 내 장점이려니
그만, 그만, 그만
싫다

신선한 공기가 마시고 싶다
뼛속까지 서늘해 지는 계곡물을 들이키고 싶다

결국은 이렇게 자신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며
내 연대의 손길이 있으면, 좀더 넉넉해질
이웃들,
손쉽게 외면해버리는

나,
싫다.

이젠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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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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