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2014, 다산책방
3부로 구성된 장편소설? 회고록?
연작소설처럼 읽히는 1부와 2부를 지날 때까지만해도
파란여우 블로그에서 보았던 책 소개글을 까맣게 잊을 정도였다.
평생을 사랑해온 아내를 먼저 저 세상에 떠나보낸 후 몇년간의 칩거끝에 내놓은 책이었다는 소개를.
19세기 후반, 사랑과 모험과 새로운 시도에 목숨을 걸었던 세 등장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로 옷감을 직조하듯 사랑과 인생에 대한 멋진 우화처럼 펼쳐진 다음
3부에 이르러 줄리언 반스의 회고록이다.
비로소 알수 있게된다. 1부와 2부에서 그가 들려준 우화는
그 자신이 지나온 삶과 사랑을 스스로 이해하고 납득하기 위해 설정한 장치였다는 것을.
쟝르의 고착화된 패턴을 뛰어넘는 글쓰기를 맛본 경험도 좋았고
그토록 깊은 비탄과 애도를 거칠 수 밖에 없는 사랑의 삶을 살았던 반스가 문득 부럽기도 했다.
이제껏 함께한 적이 없었던 두 사람을 함께하게 해보라. 때로는 세상이 변할 때도 있지만, 그러지 않을 때도 있다. 그들은 추락해 불에 타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로, 새로운 일이 벌어지면서 세상이 변하기도 한다. 나란히 함께 그 최초의 환희에 잠겨 몸이 떠오르는 그 최초의 가공할 감각을 만끽할 때, 그들은 각각의 개체였을 때보다 더 위대하다. 함께할 때 그들은 더 멀리, 그리고 더 선명하게 본다. (52쪽)
그런데도 어찌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을 갈망하는 것일까. 그것은 사랑이 진실과 마법의 접점이기 때문이다. (61쪽)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이 감정은 예전엔 내게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는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영혼을 가졌다는 것, 내가 아는 건 그겁니다. (91쪽)
당신은 그녀와 공유하던 어휘, 어법, 말장난, 둘 사이에만 통하는 언어의 지름길, 둘 사이에서만 통했던 농담, 유치함, 장난 섞인 핀잔, 야한 첨언들을, 풍부한 기억들이 담겨 있지만 남에게 설명하면 아무 쓸모도 없는 이 모든 모호한 참고자료들을 잃었음을 가슴 아리게 느낀다. (145쪽)
고통은 당신이 아직 잊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고통은 기억에 풍미를 더해준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이다. (187쪽)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을 갈망한다. 사랑은 삶의 새로운 '패턴'이기 때문이다. 패턴은 '버티며 살아가게 힘을 주는 어떤 원칙'이다. 패턴은 사랑하는 모든 이가 제 한 몸을 담고 싶은 구조이다. "우리는 평지에, 편편한 면 위에 발을 딛고 산다. 그렇지만, 혹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열망한다. 땅의 자식인 우리는 때로 신 못지않게 멀리 가 닿을 수는 있다. 누군가는 예술로, 누구는 종교로 날아오른다. 대개의 경우는 사랑으로 날아오른다. 그러나 날아오를 때, 우리는 추락할 수 있다. 푹신한 착륙지는 결코 많지 않다." (2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