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지
<正義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리 호이나키 저
나무72
2008. 1. 14. 21:38
몇달 전 한겨레 서평을 읽다, 이 책을 소개하는 한 문장이 대번에 눈에 들어왔다.
"한사람의 혁명이 세상을 바꾼다"
집단의 변화와 집단의 결의, 집단의 실력을 기르는 일은 개인의 치열한 자기계발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요즘와서 많이 한다. 그리고 자잘한 일상의 축적, 구질구질할 수 도 있는 밥벌이의 문제까지 중요하게 포함하여 개인의 삶 전체 과정에 걸치는 만드는 '한 사람의 대안적 삶'들을 만들어 모으지 않고서는 유토피아의 도래란 무망한 일이라는 생각도.
독일 태생의 이민자 손자인 저자는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도중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학내 시위를 접하고서 명백하게 잘못된 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미국정부를 공격하는 행동을 고민한다. 몇 달 후, 그는 가족과 함께 조국 미국을 버림으로써, 참된 애국을 실천한다.
멕시코에서 어느정도 안정된 경제적 기반을 갖추고, 망명 지식인으로서의 품위 있는 생활에 익숙해 질 즈음, 지은이는 '이게 아니다' 고민을 하다, 자기의 소명은 모순투성이지만 자기의 조국인 미국에 돌아가서 그 속의 현실, 모순에 대결하는 삶에 있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
실생활과 유리되고 가진자의 편에선 교육논리를 재생산할 뿐인 기성 대학의 교원으로 편입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차에, 일종의 '실험대학'이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다. 바로 달려간 지은이의 경력과 실력을 높이 산 학교측은 저자를 바로 채용하기로 결정하고, 처음 몇해 신명나게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집중한다.
7년이 지난 후, 종신교수 채용을 몇달 앞 둔 지은이는 다시 고민에 빠진다. 안락한 도시의 삶에서는, 물질적인 보장이 가져다주는 만족에서 헤어나오지 않고서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고 실천할 수 없지 않는가. 종신교수 직을 박차고, 학교를 떠나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에서 최대한 떨어진 '자급농'의 삶을 실천하기로 결단한다.
가족들을 이끌고 숲으로 간다. 천막을 치고, 구덩이를 파서 임시 변소를 만들고. 나무를 베어 직접 집을 짓는 것 부터 시작했다. 초단위로 미분된 현대의 시간관념에서 벗어나, 선조대부터 내려온 경험과 지혜에 의거하여 함께 농사지으며 사는 생활에 적응해나갔다.
권두에 실린 역자 김종철 교수의 극찬에 비한다면, - 내 생활의 감정과 고민과 많이 떨어져 있기 때문일터인데 - 그렇게 커다란 울림을 받지 못했다. 기득권과, 자기의 틀 속에 안주하지 않으려 시종일관 자신의 도덕률에 엄격하게 생의 선택을 일치시켜왔던 저자의 인생 행로가 조건을 넘어서는 결단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훌륭한 귀감이 될 것임은 물론이다. 마치 니어링이 그랬듯, 제가 속한 집단이 움직이는 방향에 대해서조차 예리한, 비판적인 태도를 잃지 않으며 온전히 개인의 실존적 결단을 '비틀거렸지만' 끝내 계속해온 것 또한 그렇다.
다만 거슬리는 것은, 저자의 장광설이었다.
다 읽고 난 후 문득 든 의문, 왜 편집자는 제목의 '정의'를 굳이 한자로 썼을까.
"한사람의 혁명이 세상을 바꾼다"
집단의 변화와 집단의 결의, 집단의 실력을 기르는 일은 개인의 치열한 자기계발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요즘와서 많이 한다. 그리고 자잘한 일상의 축적, 구질구질할 수 도 있는 밥벌이의 문제까지 중요하게 포함하여 개인의 삶 전체 과정에 걸치는 만드는 '한 사람의 대안적 삶'들을 만들어 모으지 않고서는 유토피아의 도래란 무망한 일이라는 생각도.
독일 태생의 이민자 손자인 저자는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도중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학내 시위를 접하고서 명백하게 잘못된 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미국정부를 공격하는 행동을 고민한다. 몇 달 후, 그는 가족과 함께 조국 미국을 버림으로써, 참된 애국을 실천한다.
멕시코에서 어느정도 안정된 경제적 기반을 갖추고, 망명 지식인으로서의 품위 있는 생활에 익숙해 질 즈음, 지은이는 '이게 아니다' 고민을 하다, 자기의 소명은 모순투성이지만 자기의 조국인 미국에 돌아가서 그 속의 현실, 모순에 대결하는 삶에 있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
실생활과 유리되고 가진자의 편에선 교육논리를 재생산할 뿐인 기성 대학의 교원으로 편입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차에, 일종의 '실험대학'이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다. 바로 달려간 지은이의 경력과 실력을 높이 산 학교측은 저자를 바로 채용하기로 결정하고, 처음 몇해 신명나게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집중한다.
7년이 지난 후, 종신교수 채용을 몇달 앞 둔 지은이는 다시 고민에 빠진다. 안락한 도시의 삶에서는, 물질적인 보장이 가져다주는 만족에서 헤어나오지 않고서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고 실천할 수 없지 않는가. 종신교수 직을 박차고, 학교를 떠나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에서 최대한 떨어진 '자급농'의 삶을 실천하기로 결단한다.
가족들을 이끌고 숲으로 간다. 천막을 치고, 구덩이를 파서 임시 변소를 만들고. 나무를 베어 직접 집을 짓는 것 부터 시작했다. 초단위로 미분된 현대의 시간관념에서 벗어나, 선조대부터 내려온 경험과 지혜에 의거하여 함께 농사지으며 사는 생활에 적응해나갔다.
권두에 실린 역자 김종철 교수의 극찬에 비한다면, - 내 생활의 감정과 고민과 많이 떨어져 있기 때문일터인데 - 그렇게 커다란 울림을 받지 못했다. 기득권과, 자기의 틀 속에 안주하지 않으려 시종일관 자신의 도덕률에 엄격하게 생의 선택을 일치시켜왔던 저자의 인생 행로가 조건을 넘어서는 결단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훌륭한 귀감이 될 것임은 물론이다. 마치 니어링이 그랬듯, 제가 속한 집단이 움직이는 방향에 대해서조차 예리한, 비판적인 태도를 잃지 않으며 온전히 개인의 실존적 결단을 '비틀거렸지만' 끝내 계속해온 것 또한 그렇다.
다만 거슬리는 것은, 저자의 장광설이었다.
다 읽고 난 후 문득 든 의문, 왜 편집자는 제목의 '정의'를 굳이 한자로 썼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