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물 교양의 탄생>, <학교의 풍경>
<속물 교양의 탄생 - 명작이라는 식민의 유령> 박숙자 지음, 2012, 푸른역사
제목이 섹시해 집어들었다. 속물=명작=교양이라는 풀이렸다!
지금은 담임 선생님 이름도 가물가물해진 중학시절, 선생님 두분의 어느 수업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거의 할아버지가 다 되신 영어선생님. 우리에게 명작 고전소설을 많이 읽을 것을 주문하며 본인의 독서편력을 은근 자랑했다. 똘스또이의 <안나 카레리나> (레에 액센트를 세계 주는 발음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를 꼭 읽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의 깊이를 알 수 있다, 뭐 그런 얘길 하셨던 것 같다. 이 선생님, 그 책을 일본어본으로 읽었다는 사실도 은근히 자랑하셨으리라.
또 한 명. 대학 갓졸업한 푸릇푸릇한 총각 과학선생님. 이 양반 또한 여름방학을 앞두고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본인의 경험 얘길 들려주셨다. "얘들아, 내가 안경을 끼게 된 계기 알려주까? 중 1 여름방학 때 세계문학전집 50권짜리 한 질을 독파하겠다고 마음먹고 깜깜한데서 책 보다 이렇게 된 거다"
여름방학은 포기했고 긴 겨울방학을 맞아, 나는 독서광 친구에게서 '한국근현대 소설전집'을 몇 권씩 빌려 읽기 시작했다. 이광수, 김유정 같은 작가들을 그 때 처음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몇 권 못 읽고 포기해버렸다.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시기의 '근대문학'의 글 - 글감과 문체 모두 - 이 영 생경했고, 그걸 굳이 참고 읽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분 선생님의 강조도 한몫했을 테고, 어느결에 생긴 '명작', '세계문학전집'에 대한 강박을 피해갈 수 없었다. 고교시절까지, ,큰 형 때문에 들여놓은, 아마도 삼성출판사에서 나왔을 '세계문학전집' 한 질을 절반정도 독파했다.
이 책 제목이 섹시했던 건, 나의 독서편력과도 맞닿아 있는 경험이 있어서였다.
책을 펼쳐들고 나는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선생님들이 강조/강요했고 우리 집과 친구 집 거실 서가를 장식했던 '명작 문학전집'의 목록은 식민지 시절 출판가에서 탄생되었던 것이었다. '양서는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생각으로 세계문학전집을 열심히 읽자는 미혹은 식민지 근대에서 배태되었다는 것이 이 책 저자의 논증의 결론이다.
지은이는 말한다. 교양이란, 개인을 비판적인 안목을 가진 시민으로 키워내는 것이라고. 그런데 우리네 교양은 자본과 지식에 잠식되어 고급스러운 취향을 과시하거나 엘리트임을 보증하는 학력자본으로 쓰이기 위한 교양, 바로 '속물교양'이라고.
매혹적인 주제와 보기드문 사료의 고증이 좋았지만, 너무 전문적인 구성탓에 비전문가가 읽기에는 좀 버거웠다.
<학교의 풍경>, 조영선, 교양인.
<불온한 교사 양성과정>에서 저자 조영선 교사가 눈에 들어와 빌려온 그의 단행본이다.
학교 현장에 깊이 뿌리박은채 붕괴의 시대 교육의 본령, 교사의 참 역할은 무엇인지
치열하게 성찰하고 분투하고 눈물흘리는 저자의 악전고투가 눈물겹게 읽힌다.
이 책 덕택에 제도-학교교육에 대한 내 편견을 일부 교정할 수 있게 되었다.
조영선을 발견한 건 올해의 큰 소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