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지

<민주주의에 반하다> 하승우, 낮은산, 2012

나무72 2012. 12. 24. 05:41

정원의 추천으로 읽은 책.

아나키스트 하승우 선생이야 익히 듣기도, 읽기도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아나키즘에 대한 그의 내공이 얼마나 깊어졌는지

잘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한국 근현대사를 아나키즘이라는 키워드로 다시 풀어냈다.

3.1운동이 얼마나 역동적으로 방방골골 온 나라 인민의 자주적인 에너지를 폭발시킨

사건이자 과정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의 독창적인 접근법이 보여주는

'인민의 관점에서 역사 다시보기'의 한가지 사례.

 

Note.

 

갑오 농민 전쟁이나 그 이후 많은 민중반란은 새로운 덕망가의 출현과 그들에 의한 유토피아 건설이라는 민중의 심성, 일군만민 사상을 강화시켰다. 해방 이후의 인민위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민중이 자신을 정치의 주체로 인식하는 흐름도 있었지만, 선거는 이런 주체의 등장을 가로막고 다시금 사이비 덕망가 질서를 확립했다. 그런 점에서 대표자를 선출하는 것보다 민중의 정치력을 강화시키고 정치 주체로 참여시키는 방법을 찾았어야 했는데, 우리 역사는 정반대로 흘러 덕망가들이 민주주의를 앞세워 권력을 잡았다.  (99쪽)

 

참여 민주주의는 대의 민주주의가 완전하지 않음을 인정하면서도 시민들의 참여가 대의 제도를 대신하기는 바라지 않는다. 참여는 자문이나 조언에 그쳐야지 통치를 위협하면 안 된다. 그런 참에서 참여 민주주의는 대의 제도를 넘어서지 못한다. ....... 참여 민주주의의 또 다른 문제점은 그것이 이미 시민인 사람만의 참여를 유도한다는 점이다. 기존의 시민층 또는 중산층이 아닌 이주 노동자, 빈민,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은 참여 민주주의가 열어 놓은 제도를 활용할 수 없다. ... 그래서 이란의 마지도 라흐네마는 참여를 '교묘한 통제의 방법'이라고 부른다. (107쪽)

 

공유가 국유를 의미할 때, 즉 국가에 의한 배타적 독점을 의미할 때, 그 독점은 사적인 독점의 형태로 쉽게 전화될 수 있다. (새만금, 4대강과 같은 사업에서 나타나는) 공공부문의 사유화는 국가에 의한 사적 소유권의 발생이자, 소유권 없는 대중의 추방이다. ... 러시아 혁명의 사례에서 보듯 중앙집권화된 권력이 해체되어 민중이 직접 권력을 잡지 않는다면, 국유화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더구나 국유화는 민중과 그 공동체의 성장을 고려하지 않는다.  (201쪽)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사회의 작은 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레닌은 나중에는 '협동조합을 신경제정책에 적응시킬 것이 아니라 신경제정책을 협동조합에 적응시켜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협동조합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212쪽)

 

협동조합이 실제로 해방구를 만들며 민중의 존엄을 가능하게 하는 조직이라는 점은 원주의 사례에서 드러난다. 노숙인의 협동조합인 갈거리 협동조합에서 노숙자들은 협동조합을 발판 삼아 사회의 주변인에서 서로 신뢰하는 시민으로, 주체로 성장하고 있다. 기존의 사회복지가 노숙자를 일방적인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면 협동조합에서 노숙자는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는 조합원이다. (2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