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폰 잔폰 짬뽕>, 주영하, 사계절
3주전에 소래도서관에 갔을 때, 가끔은 좀 '말랑말랑한' 소재를 다룬 책도 읽어야겠다 싶어 집어 든 책이다.
음식의 역사를 다룬 책을 흥미롭게 읽었던 적이 있어서 - 돈까스의 역사와 같은 - 흥미가 당겼다.
책 제목에서 나타나듯, 한 중 일 동아시아 3국에 걸친 음식 문화의 교류사, 문화평론서라 할 수 있겠다. 각각 차폰은 중국음식, 잔폰은 일본음식, 짬뽕은 한국음식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 음식 메뉴의 의 뿌리와 형성과정은 3개국에 모두 걸쳐있다.
그 과정은 이렇다.
일본 남서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나가사키는 역사적으로 중국과 조선을 오가는 무역선이 드나드는 항구도시였다.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상선도 이곳을 거점으로 수출입을 했던 곳이다. 17세기 이후 중국 화교가 세계로 거점을 넓혀가던 시점에 나가사키에는 세계최초의 차이나타운이 생겼다. 현지인들의 입맛과 기호에 적응한 중국식당이 대거 생겨난 것은 당연한 일.
이 과정에서 오늘날 우리가 '우동'이라 부르는 음식이 탄생하게 된다.
중국 음식 '훈툰'이 원조다. 작은 만두를 국물에 넣어 먹는 일종의 만둣국인 훈툰이 일본에 진출한 후, 에도시대 일본에서는 만두 대신 국수를 넣어 먹었다. 훈툰의 일본어 '우동'의 성립사다.
20세기 초반 나가사키에 '시나우동'이 등장한다. 차이나우동이다. 오래지 않아 이름이 잔폰으로 바뀐다. 중국인들이 이 음식을 즐겨먹는 모습을 본 일본인들이 중국어 '츠판 - 차폰(밥을 먹다는 뜻)'을 흉내내어 음식이름으로 사용했다는 설명이 따른다.
각종 해산물과 돼지고기, 표고버섯, 죽순 등을 넗고 끓인 국물에 국수를 만 음식 '나가사키 잔폰'이 바로 이 음식이다.
한국의 '짬뽕'도 기본재료는 비슷하지만 고추, 생강 등을 많이 넣어 훨씬 매운 맛이 난다. '잔폰'과 발음이 비슷하기도 한데 흥미로운것은 '짠폰(마구 뒤섞어 혼잡하다는 뜻의 말레이어)', '짠뽄(같은 뜻의 타이완어)'과 같이 발음과 뜻이 유사한 단어가 동남아시아에 고루 있다는 사실이다. 이 지역은 모두 20세기 초반에 일본군국주의가 점령했던 지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저자가 설명하는 음식 전래의 비밀은 나카사키 화교와 조선 화교의 교류에 있다. 나가사키 중국요리점에는 맛이 거의 꼭같은 한국식 자장면이 나온다. 본래 일본음식인 절인무우 '다쿠앙'도 곁들여서.
한국의 중국요리점에서도 짜장면, 짬뽕, 우동, 다쿠랑이 함께 나온다. 양국 화교 모두 일제 아래에서 공생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같게된 공통점이라는 설명이다.
음식을 통해 찾아볼수있는 동아시아 3국의 교류의 역사, 문화 확산의 과정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비빔밥과 김치의 진출이 대표적인 예. 일본의 지방 소도시 아무곳에나 있는 동네 슈퍼에 가더라도 '비빔밥용 포장 콩나물'을 쉽게 구할 수 있을정도로 일본에서 비빔밥의 인기는 대단해졌다. 몽골요리가 일본을 거쳐 한국에 소개된 '샤브샤브' - 중국의 '훠궈'의 사례도 재미있으며, 일본 관광객들이 한국 식당에서 만나게 되는 문화적 충격 중 하나가 '회덮밥'이라는 소개도 그렇다. 세상에, 스시를 '비빔밥'으로 만들어 먹다니! (나는 회덮밥도 일본 음식인줄만 알았다)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로 책을 시작한 저자는 '음식문화를 정치경제학으로 풀어 이야기하고 싶었'던 의도를 본격적으로 보여주기시작한다. 한족이 과반 이상을 차지해버린 중국 곳곳의 소수민족 음식의 현재를 이야기하며, 이른바 '티벳사태'의 원인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도 한다. 음식과 함께 소멸해가는 중국 소수민족문화의 암울한 정체에 대한 지적인 것이다.
저자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국가주의의 확장과 주변부 다양성의 소멸'이다. 제주도가 그 예다. 제주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은 뭘까. 갈치회, 고등어회? 갈칫국은 원래 경상도 남부지방에서 많이 해먹던 메뉴였다. 최근에 갈치 어획량이 제주에서 급증하며 생긴 현상일뿐이다. 제주 전통의 몸국, 멜젓, 톳지, 마농국 따위는 이미 소멸해가기 시작했다.
오키나와와 일본본섬 사이에 위치한 아마미오 군도의 사례 도한 비극적이라 할 수 있겠는데, 오키나와와 함께 독립국으로 지내오다 사쓰마에 군사적으로 병합된 '식민지'가 되며, 아마미오에서는 본섬의 요구에 따라 사탕수수 단작으로 재배작목이 바뀌어버렸다. 자급할 전통농업기반이 파괴되어버린 채 사탕수수를 수확해 세금으로 낼 정도까지 바뀐 아마미오 섬 주민들이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만성적인 식량부족으로 고통받아왔음은 물론이다.
이제 결론이다. 저자의 관점은 명확하다. 로컬푸드 시스템만이 살길이라는 것이다. 김치와 불고기를 필두로 한 한국음식의 세계화를 떠들기전에 식량자급률 25퍼센트의 현실을 냉정히 살피자고 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있으니 '먹을거리공동체센터'의 조성이다. 오일피크와 국제적인 식량난의 도래 전체 서둘러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뜻인데, 도심 아파트단지에서 뜻을 맞춘 50가구 내외가 함께 주차장 공간에 논밭을 조성하여 먹을거리를 직접 생산하자는 구상이다.
오늘이 반납일이라 채 못다 읽은 말랑말랑한 이 책은 그냥 제껴버릴까 싶었는데 재미와 지식, 정치적 관점을 고루 갖춘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