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범국민대회 단상
선배의 권유로 참 오랫만에 '815대회'에 참여했다.
2시간 남짓, 행사장인 여의도 한강공원에 있다가 내일도 공사가 잡혀 있어서 서둘러 일어났다.
815대회에 처음 참가했던 게 벌써 20년이 넘었구나.
세월이 흐른만큼 바뀐것도 있고, 바뀌지 않은 것도 있었다.
지하철 막차시간 여유가 별로 없을텐데 자리를 뜨지 않는 인천의 벗들의 모습도 바뀐것 중 하나다.
묻는다. "벌써 간다고? 누구 차 타고 가는데?" "전철타고 가지~" "헐~"
문승현이 지은 '그날이 오면' 이 울려퍼졌다.
아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처음 이 노래를 만났던 스무살에, 이 대목을 듣고 가슴이 컥 막혔다. 소름이 끼쳤다.
오늘도 가슴이 아려왔다. 이 노랫말의 주인공 전태일 열사가 떠오르기도 했고, 이 노래를 듣고 부르며 가슴이 뜨거워졌던 내 지난 시절이 생각나서이기도 했고, 그날은 여전히 너무나 멀기만 한 것 같아서기도 했고.
그런데 그날이 오면이 여러번 변주된다. 합창단의 노래로도 나오고, 영상의 배경음악으로도 나온다.
그날이 오면이 흥겨운 댄스 리듬에 실려 편곡되고, 장중하다 말다 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섞인다.
이 날, 합창으로 그날이 오면을 부른, 오늘 2012년 8월 11일 밤을 위해 현장에서 소금땀 흘리다 퇴근해서 함께 합창연습을 했을 정직한 참가자들은 이 시대의 또다른 전태일들이다, 그러나
왜 하필 올해, 이 순간에 '그날이 오면' 인 것인지, 그날이 오면 뿐인 것인지 - '뿐'은 아니었으되 내겐 그렇게 받아들여졌으므로 - 알 수 없었다.
노찾사가 2집을 내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와 함께 '그날이 오면'을 히트시켰던 1989년으로부터 23년이 흐른 지금, 왜 그날이 오면 뿐인지,
20년이면 강산이 두번이나 바뀔 시절이고, 청청한 인걸들 수 없이 지고 다시 나는 시간인 것을,
오세훈 덕택에 즐기게 된 최첨단 분수 앞에, 모처럼 열대야 사라진 서늘한 늦여름 즐기러 여기저기 자리 깔고 앉은 수많은 보통 서울 시민들 앞에서, 나는 감동스럽지만 그들은 과연 감동할지 알 수 없는 '그날이 오면'을 줄창 틀어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콘크리트로 완벽하게 처발라졌던 과거 여의도 '광장'은 광장을 집회장으로 이용하려던 자들의 놀이터였다. 파쇼건, 좌파건 간에. 광장은, 20세기 말 남한의 광장은, 수십대의 전경버스가 둘러싼 덕택에 참가자들로 하여금 '적과 아'를 분명하게 체감하게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고독하게 한데 모인 우리의 일치단결의 기운을 높일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그 주체가 민주노총이건, 자유총연맹이건 간에 말이다.
완전히 열려버린 21세기의 여의도 공원은, 조직화되지 않은 무수하고 다양한 시민과 인민과 백성들의 놀이터다. 여기서 대형스크린을 걸고 초대형 앰프를 틀어대고 - 그것도 토요일밤에 - 하려면, 최소한 본의 아니게 듣게 된 청중들 - 바로 대중! - 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개나 소나 소통을 강조하는 시대, 본의아니게 소통을 서로 해야만 하는 상황이 생겨버린 것 아닌가? 소통이 되려면 대화가 필요하다, 선동이 아니라. 의미를 주고받을 수 있는 공통의 언어가 있어야 한다.
2012년의 '그날이 오면'은 공유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니었다.
2012년 오늘 '평화통일'을 주제로 여의도 공원에 모인 장삼이사들과 '대화'의 주제로 삼을만한 이야깃거리들이 무엇이었을지.
반통일 매국노 멘탈붕괴 MB 처단을 외치고, 임수경과 문익환과 인천을 찾았던 미녀 응원단의 화면을 보여주고, 이산가족 상봉의 눈물겨운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 그 장삼이사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대화의 언어로 적합했을지, 모르겠다. 너무, 상투적이다.
현실은 너무 상투적이지 않지 않은가. 보편적 복지의 전도사로 변신해버린 박근혜도 상투적이지 않고, 외교고 정세고 다 개무시해버리고 제놈 패거리 표만 머리에 넣은 병신같은 MB의 독도방문 쇼맨십도 기가막히고, 갈기갈기 찢겨가는 진보진영의 양상도 아주 새로운 현실이다.
상투적이지 않은, 매번 새로운 버전으로 고통스러워지는 현실과 대면하고 있는, 눈물겹고 이쁘고 지겹고 보고싶고 사랑스럽고 죽이고 싶고, 살리고 싶은 장삼이사들과 소통하려면, 대화의 언어도 진보해야 하는 거 아닌가.
'통일과 민중의 삶'이 주제라면, - 이 말 정말 죄송하다 - 이십수년째 굳건히 무대를 지키고 계시는 온갖단체 수장님들 말고 어르신들 빼고,
통일정세에서, 민생에서 오늘 2012년 가장 민감하고 고통을 받고, 대중들이 궁금해하고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수다한 사연의 주인공들을 모실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북한 이탈 주민 형제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떤가, 815에.
오늘 이순간 가장 극악한 노동탄압의 현장에 서 있는 SJM 노조원들도 있고,
4대강 공사의 마지막 발악, 두물머리 행정대집행을 앞두고 있는 그 고운 농부님들이야기는 어쩐가.
여의도 공원에서 행사가 가능했던 게 박원순 선생이 시장이 되서였다면, 그는 왜 이자리에 올 수 없었는지,
박원순의 친정, 참여연대나 희망제작소, 아름다운 재단처럼 참신하게 진보의 영역을 끝없이 새롭게 개척해온 인재들이 8월이 되어 통일을 함께 이야기했더라면 이 대회가 내용과 형식에서 얼마나 더 풍요로워졌을지
무대에선 강정마을 강동균 회장님을 보고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천성 농삿꾼이었던 그이, 5년 동안 투쟁하면서 완전 투사가 되었더라.
MB정권을 규탄하는 목소리 높았고, 행사가 행사인만큼 자주통일과 민중을 얘기하는 연사는 되셨는데
그이의 5년전 질박한 모습 그대로, 강정이 어떻게 찢기고 피흘리고, 또 희망을 찾고 있는지
살아있는 언어로 말씀하시지 못하는가,
그럼에도 여전히 묵묵하게 진중하게
예전의 활기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오래된 민중가요와 익숙한 율동이라도 나올라치면
오른손을 팍팍 올리며, 다리를 흔들며 리액션을 보여주는
이제는 중년이 된 옛시절의 투사들 사이에서
나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는데
이래저래 마음이 아프고 아린 밤이었다
이래저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