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이승주, 2007-09-18
나무72
2007. 9. 25. 22:29
중학교 2학년때, 85년부터 사귀었으니 23년째다.
말이 없던 나와는 달리 늘 쾌활하고 놀 줄 아는 친구.
'말을 더듬는 자신에 대한 자학'에 시달리던 내 사춘기의 홍역을 무사히 치를 수 있었던 데에는
이 친구의 공이 절반이었다. '남 앞에서 말을 할 땐 네가 왕이라고 생각해. 말을 듣는 사람은 모두 네 신하고. 그럼 하나도 안 떨리고 말도 안 더듬을 걸?'
고교시절, 학교가 달라진 이 친구와 각자 자라나는 생각을 편지로 나누며 글을 읽고 쓰는데 재미를 붙였고,
'여자가 많아 운좋으면 하나 건질지도 모른다'는 흥분을 억누르며 인천 송림동 달동네 교회 학생회 주관 '문학의 밤'에 참석한 것도 이 녀석의 손에 이끌려서였다.
"빨갱이짓 하느라 바빠 옛날 친구한테 연락도 안하는"
미욱한 내게 화내지 않고 때마다 전화를 걸어 술을 사주며
고민을 들어준 것이 내 이십대 이승주에 대한 기억이다.
그런 승주가 제주도에 왔다.
하필 모처럼 날 잡았는데 태풍이 올라왔지만
'제주도는 비바람불 때가 제격'이라는 내 우격다짐을 못 이기는 척
한성항공 타고 온 다음
나보다 돈을 좀 더 번다는죄로, 이틀 밤낮의 술값을 모두 이 녀석이 냈다.
다행이다. 승주가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