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지
<우연과 필연>, 자크 모노, 궁리, 2010
나무72
2011. 6. 9. 00:49
* 책에 관한, 사적인 잡설
- 책이나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쓸 때 이미지를 캡쳐해 넣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는다. 누구 보여주려고 쓸 생각이 없었으므로. (기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지도 모르나) 그러나 이번 경우는 예외로 하자.
- 이 책에 대한 정보는 누군가의 독서안내서에서 얻었다. 이런 복잡한 철학책이므로, 아마도 대학교수였을터. 아마도 극찬을 했을 것이다. 꼼꼼히 어딘가에 기록해두었다가 재작년엔가, 헌책방에서 샀다. 아래그림이다. 삼성판 세계사상전집 31번, <<科學과 近代世界/遇然과 必然>>
- 그런데 삼성출판사 간 세계사상전집은 어릴적 우리 집에 한질 전체가 다 있던 시리즈였다. 1982년에 나왔으니 아마도 큰 형 대학 입학 직후, 어리버리하게 책장사의 꼬임에 넘어가, 부모님을 졸라서 사냈을 것이다. 형이 이 전집을 얼마나 봤는지는 잘 모른다. 모두 32권에 이르는 전집가운데 내가 본 책은 한권도 없다. 비뇨기의사해서 먹고사는 소부랄이 우리집에 들렀다가 <<장자>>를 훔쳐간 적은 있다. 아, 이 책은 그러나 내 학창시절 유용한 쓰임새가 있기도 했다. 할일없이 방에서 뒹굴거리며 누워있을때, 책 등이 가지런하게 번호를 맞춰 서가에 꽂혀진 모양은 내게 지식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제목이 모두 - 조사를 빼놓고는 - 한자였으므로, 심심풀이 한자공부를 이 전집을 이용해서 했던 기억이 난다.
- 이 전집류를 손도 대지 않았던 이유는, 이 책의 편집탓이 많을 것이다. 2단 세로쓰기다. 요즘 애들은 구경도 못한 편집일지도 모른다. 국민학교 고학년때, 역시 소유자는 큰형이었던, 간간히 흑백삽화가 들어가있던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을 몇권 얻어 읽었다. 그 놈들도 2단 세로쓰기고 한자가 섞여 있었다. 욕지기를 참으면서, 몇 권 겨우 읽었다. 나는 아마도 2단 세로쓰기로 책을 읽은 거의 최후의 세대이자, 한글전용 1단 가로쓰기로 전문서적을 본격적으로 읽기시작한 최초의 세대가 아닐까.
- 즉, 내가 헌책방에서 책을 사들이기전 십수년 동안 우리집 서가에는 같은 책이 꽂혀 있었던 것을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책을 받고 나서 허탈했다, 조금. 결국, 1년이 넘도록 그 책은 손도대지 않은 채로 내 방 서가 맨 윗칸에 던져져 있었다.
- 그러다 작년에 새로 완역된 책이 나온 것을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역자후기가 꽤 매력적이라 어려운 책일거라는 부담을 무릅쓰고 빌려왔다. 대출기한을 한번연장하고 3주에 걸쳐 겨우 읽었다. 번역도 괜찮았고 역주가 충실했으며 무엇보다 철저한 과학자인 원저자의 글재주가 보통이 아니게 뛰어났지만, 분자생물학과 유전학, 서양 고전철학을 종횡무진하는 저자의 스케일을 대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고전반열에 올랐겠지. 다시 생각해보면, 아주 재미있는 책이기도 했다. 띄엄띄엄 읽었지만, 한번 잡으면 한 챕터씩은 그냥 넘겼으므로.
* 책의 간략한 내용과 간략한 감상.
- 대단한 책이다. 아주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벗들과 함께 읽고 토론해 보면, 참 좋겠다.
- 당연 꼼꼼한 독후록을 작성해야 할 가치가 있는 책이나, 밑줄을 그을 수 없었고 반납기한이 정해져있었으므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중고라도 사들여서 독서노트를 해야겠다.
- 제목 '우연과 필연'은 생명의 본질과 기원에 대한 저자의 철학적 해석을 말한다.(뭔얘기냐..) 그러나 아주 도전적인 문제의식을 품고 있는 개념이다.
- 책의 중간중간에 여러번 정통으로 언급되는, 저자가 빈번히 공격하는 맑스의 '변증법적 유물론'. 오래 전 벗들과 했던 세미나의 주제 가운데에도 '우연과 필연' 을 다룬 장이 있었다. 맞다. 바로 그 우연과 필연이다. 역사에서의 우연과 필연으로도 읽어도 좋다.
- 내 기억으로는, 변증법적인 법칙성을 가진 자연의 운동과 마찬가지로, 인간 역사의 발전 또한 법칙성을 갖고 있다 (사적 유물론!), 그것은 필연이다.
- 또 다른 기억. 아마도 변증법적 유물론 세미나 중이던가 아니면 고교시절 생물시간 이던가.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다분히 왜곡된 독해. 생물종은 더 복잡하고 더 우월하고 높은 종으로 상승발전하는 과정을 갖는다. 그것이 곧 진화고, 그러한 발전이 필연이다.
- 곧, 변.유와 사.유에 대한 나의 천박한 이해를 아주 거칠게 정리하면 이런거였다. 자연과 인간의 역사 모두는 과학적인 발전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발전은 나선형의 곡선을 따르며 상승하는 방향성을 갖는다. 더욱 복잡하고 지능이 뛰어난 종으로 진화해 나가듯, 사회도 더욱 발전되고 우월한 사회로 발전하고 상승한다. 인간의 역사에서, 그 발전의 단계는 생산양식-사회구성체로 개념화되며, 그러므로 현재의 체제,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붕괴하고 그 다음단계로 인간의 역사가 진화하는 것은 필연이다!!
- 우연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필연적인 역사속에서 개인의 역할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던 기억. 어떤 위대한 개인이 출현하는가가 우연의 문제였던가. 아뭏든, 이 세미나의 효과는 대단했다. 나는 그 후 여러번 반복해서 변.유와 사.유를 학습했고, 때로 후배들을 학습'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믿음'을 가져왔다. 맑스주의 역사발전의 이론은 '법칙=필연'이라고. 필연과 법칙의 흐름을 타고 살고 있는 나는, 당장 녹록치 않은 하루하루가 고되더라도 필연과 자유의 왕국을 꿈꿀 수 있었으므로 행복했다. 필연을 인식한다는 것은 그래서, 적어도 내겐 중요했고, 아마도 변유/사유의 세미나의 목적가운데 중요한 한가지가 나같이 따지기 좋아하고 스스로에게 들이미는 명분을 중요시여기는 놈들에게 '필연과 자유'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을 수행하는게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
- 역사발전과 필연에 대한 인식은 그저 관념만은 아니었다. 그 후 겪었던 많은 개인적인 혹은 집단적인 체험은 나의 신념체계를 강화시키는데 많은 경우 부족함이 없었으므로. 대중투쟁은 상승발전했고(한동안), 민주정부가 두 차례 들어서며 이렇게 역사가 '상승';발전하는구나 하고 믿기도 했다.
- 이 책의 저자, 자크 모노는 맑스주의사상의 위대성과 역사에 대한 공헌을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사적 유물론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다만, 엥겔스가 수행했던 당시 스타학자였던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유물론적 해석의 오류, 그로부터 이어지는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공격에 주력할 뿐이다. 그가 공격하는 것의 핵심은 바로 '우연과 필연'의 문제다. 그 요체는 생명의 기원과 진화의 문제다.
- 저자는 20세기 - 맑스와 엥겔스는 물론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을 써서 당대의 자연과학 논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레닌까지 모두 죽은 후인 - 초중반기에 이루어진 현대 자연과학의 명백한 성과와 증거를 동원하여 자신의 논지를 펼쳐나간다. 그 무기는 양자역학과 분자생물학이다.
- 생명의 본질, 특히 인간의 사고에 대한 저자의 탐구는 가장 미시적인 단위에서 시작한다. 단백질과 DNA, 그리고 세포와 개체를 구성하는 신체기관을 거쳐 동/식물 개체와 생물종으로 나아간다.
- 생명체의 본질과 진화의 메커니즘은 분자적 속성에 근거하고 있다. 분자와 원자 단위에서 운동은 어떠한 법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고, 그 변화는 확률에/우연에 근거하여 발생한다. (양자역학과 불확정성의 원리!) 이 분자적 속성의 실체가 바로 우연에 있다는 것이다. 생명체의 기원에서도, 진화에서도 그렇다. 진화는 생물종의 불변적 영속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경향에 대해 '우연'히 발생하는 변이들이 불러일으키는 현상이다.
- 긴 시간 열띤 토론속에서 이루어졌을 말년의 대학자의 강연을 압축해놓은 책이다보니, 분자생물학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이는 논지를 빼먹지 않고 따라가기는 쉽지 않은 텍스트이다. 그러나 이 사상체계가 갖는 함의는 너무 엄청나다. 저자는 위와 같은 주장을 뼈대삼아, 자연(존재)과 정신(의식)의 기원을 아예 별도로 놓거나 - 기독교 사상체계 - 혹은 자연의 발전과정을 뒤따르는 단계에서 동일한 법칙성을 찾아 인간역사의 발전을 설명할 수 있다는 사상체계 (맑시즘!) 전체를 붕괴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책 안에서 저자의 공격은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인류 역사 전체를 거쳐 도달했던 화려하고 장대한 정신의 체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장면을 연출해 버린 것이다. 모래성이 무너진 다음에 남는 것은, 바로 우연성의 세계. 신과 관념론 철학의 설명이 사라진 고독하고 차가운 우주속에 던져진 자신에 대한 깨달음이다.
- 이 책이 내게 가한 또 하나의 충격. "의식에 독립에 존재하는 물질을 거울처럼 반영하는 것이 의식의 속성이고 자연과 인간의 세계전체가 법칙의 지배를 받는 다면 세계의 본질을 인식할 수 있다"는 ML주의 인식론에 대한 통박. 발전법칙의 존재에 대한 부정은 인식가능성에 대한 회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 어쨌거나 대단한 스케일이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말미에 '참된 사회주의 세상의 건설을 위해서(라도!) ML주의 신앙이나 기독교윤리와 하루 빨리 결별하고 과학의 메시지 자체에 충실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이 사람은 자연과학자, 생물학자다.
- 새로운 세상을 제대로 만들려면 철학이 필요하다. 선배세대들이 그렇게 열심히 철학학습을 강조하고 후학들을 가르치려고 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문제는 그 과정속에서 획득해나가야 할 '앎'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공부의 과정속에서 그 '앎'이 도그마가 아닌지, 과연 현실세계에 대한 끝없이 창조적인 설명력을 생성해 낼 수 있는 살이있는 앎인지에 대한 검증이 수반되어야 한다. 맑스고 레닌이고 주사고 헤겔이고, 예수고 부처고 간에 말이다. 이 비판적 사고의 과정을 거쳐 살아남은 앎이 아니라면, 앎은 오히려 자기와 타인의 삶을 구속하는 족쇄가 되기 쉬울 뿐이다.
- '우연과 필연'이 자극한 키워드, 정리.
맑스의 역사발전법칙이 여전히 유효한가. 아니, 역사발전법칙이라는 개념자체가 성립 가능한 것인가.
자연법칙과 동일한 법칙성을 인간의 사회와 역사에 대해 적용할 수 있는가.
그 법칙을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가.
맑스주의가 진화론을 - 의도적으로 - 오독하지는 않았는가. 아니, 지금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진화론은 어떤 의미인가.
이 시대에 진화론이 갖는 함의는 무언가.
가장 중요하게도, 우주와 생명의 본질을 나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가, 나, 고독해하거나 두려움이나 허무에 빠지지 않고
우주속에서, 역사속에서의 내 生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 내가 생존하고 살아가는 일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