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병세 49재를 생각하며
나무72
2009. 9. 9. 23:30
병세야. 정국이야.
병세야. 병세야.
네 이름을 여러번 부르니, 또 눈물이 나려고 한다. 아직도 네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네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전과 똑같이 일하고, 먹고, 싸우고, 욕하고, 똥을 싸고, 사랑하며 살고 있다.
네가 가던 날, 그 며칠 후 까지는 하루에도 여러번 눈물이 나고 가슴이 아팠는데
요즘은 하루에 한번쯤 네 생각이 나고, 가슴이 아프다.
유행가 가사마냥, 이렇게 네가 서서히 잊혀진다는 사실이 더욱 괴롭다.
네 추모 블로그를 보고, 너에 대한 내 기억을 찬찬히 정리해봐야지, 생각했는데
생각이 글로 쉽게 옮겨지진 않는구나.
몇 달 전 컴퓨터 고장으로, 아마도 네 얼굴이 많이 들어있을
내 일년 반 제주 생활 사진첩 폴더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으니
더 네 존재가 내 머릿속과 가슴안에서 엷어지기 전에
서서히 시작된 단기기억상실이란 놈이 더 힘세지기 전에
네 기억을 글로 좀더 많이 남겨두어야 겠다.
어제 운봉이에게 전화를 받고, 네가 49재였단 얘기를 듣고,
내 자신이 좀 한심하긴 하다만, 오늘 바쁜 일과를 끝낸 다음
또 아무일 없던 것처럼 술을 마시기 전에 네 생각이 떠올라
글을 쓴다
너를 처음 본 건, 창옥이 선배님 선거때였지.
2006년 봄 대정에서.
이른 아침, 읍사무소 부근 선거사무소 앞에
근사하게 양복을 차려 입은 영화배우 뺨치게 잘 생긴 청년.
내 기억속에 들어 있는 너의 첫 인상이었지.
그 때도 너는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어. 예의 그 선한 인상으로.
그 때까지만 해도 설마 내가 너와 이렇게 가까와지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지.
6개월여가 지나서, 내가 서귀포에서 생활하게 되며
네 옆자리에 앉아 1년 반 시간을 함께 보내며,
우리는 참 많은 시간을 함께 했지.
네 똑부러지는 보고서와 다르게, 네가 잘 준비해놓은 유세차량과 다르게
늘 지저분한 네 자리가 일단 떠올라.
넌 늘 너무 일이 많았잖아. 나 또한 일을 쌓아놓고 하는 성격이라,
많은 이야기 나누지 않아도 네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지.
그래도 저 놈 좀 심하군.. 하며 널 지켜 보고 있자니,
가끔씩 날을 잡아 대 청소를 하더구나.
그런날이면 너는 네 자리뿐만이 아니라 사무실을 온통 뒤집어 놓고 청소를 하는데
가장 궂은 일인 화장실 청소는 자주 네 몫이었지. 네 몫을 자청했지.
늘 단정하게 차려입은 양복바지저고리 그대로 말야. 그 구정물을 바짓자락에 튀겨가면서.
일처리가 꼼꼼하지만, 일하는 속도는 별로 빠르지 않았던 너.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았을까. 너를 잘 아는 사람들은 짐작 했을까.
수많은 밤과 새벽, 회의자료를 준비하고 묵묵히 짜증내지 않고
오로지 혼자의 놀라운 힘으로 산더미 같은 실무를 준비하느라
토끼눈알이 되도록 지새웠던 너의 시간들을 말이다.
눈에 밟히는 도경이, 너의 안위를 언제나 노심초사 염려하는 지은씨의 떠오르는 얼굴을
너는 애써 지웠겠지.
아마 재작년 늦가을쯤이었을거야.
거나하게 술이 취한 나, 양마단지까지 올라가는 택시비를 아끼려 그랬던 것일까
새벽 2시쯤에 사무실 철문을 열쇠로 따고 들어갔는데
조명을 모두 다 꺼놓고, 무슨 모닥불 쬐듯 흐릿한 모니터 불빛에
네 얼굴만 환하게 비추인채
붉은 눈을 하고 너는 나를 보고 또 웃었겠지.
나는 나를 술 먹도록 내버려두고 혼자 바보같이 그 시간까지 일했던
별것도 아닌 실무를, 나눠 할 수도 있는 실무를 혼자 온전히 책임을 떠안았던
너를 보며 기가막히고, 속이 상하고, 네게 미안하고 네가 존경스럽고
복잡한 감정에 할말이 없었어.
나는 당 사무국장인 네게 늘 불만이 있었다, 병세야.
'불만'은 적당한 표현이 아니겠지. 왜 그렇게 일을 하는지 원망이었을거야.
좀더 정치적으로 일을 하지 않는 네가.
유일한 상근자인 네가 온갖 실무를 도맡아 처리하느라
정작 동으로 서로 남으로 북으로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못하는 걸 보면서
답답하기도 했고
술을 마시면 운전을 못하고, 운전을 못하면 집에 못가니까
그래서 사람을 아예 안만나버리나 싶어서,
덕준이 형이 제안해 우리는 너랑 운봉이랑 양마단지에 함께 합숙을 했잖아.
그래도 너는 일순위가 사람을 만나 술마시기.. 는 아니었던 것 같아.
시작부터 끝까지, 농민회 어르신들을 챙기는 일부터 스물 댓살 먹은 막내 당원들을 신경쓰는 일까지,
시당 소식지를 빼어난 아래아한글 편집 실력을 발휘해 직접 디자인하는 일부터
현애자 의원님 추석선물을 트렁크에 싣고 곳곳에 흩어져있는 잠재적 지지자에게 배달하는 일까지
오로지 온전하게 당을 책임지는 사람은
외로워도 너 혼자라는 각오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
빵구낼수 없다는 각오, 결코, 결코
창옥이 의장님 계시지만 어떻게 마음고생하고 계신지 네가 옆에서 다 알고 있었기때문에
육짓것들에게 완전히 믿고 맡길 수 없는 일도 있었기 때문에
너 혼자서라도 다 책임지겠다는 바보같은 의지였겠지.
도경이가 눈에 밟혀도
그런 너라서, 조직이 어디가 돌아가지 않는지
운동이 정체되는 아주 세세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권위주의가 우리를 좀먹고 있는 것인지
어떤 나태함이 우리를 뒤쳐지게 만드는지
잘 알고 있었을거야
한번도 얼굴 찡그려 벗들에게 싫은소리 할 줄 모르는 너였지만
참고, 이해하며 속이 답답했겠지
술 먹으면 늘 자는 행동으로 유명한 너랑 내가
그래서
어느 여름날
새벽 다섯시 반까지 함께 술을 마신적도 있었지
동문로터리 근처 투다리집
얼굴 이쁘장한 주인 아지망 있는 집에서
그런 얘기하며
서로 마주보고 졸기도 하면서 말이야
네 둘째 녀석 이름이 도훈이라 했던가? 지금 한창 재롱이 늘어갈 때지.
우리 둘째도 많이 자랐어. 요즘 말이 하루가 다르게 부쩍 늘고, 말귀를 전보다 훨씬 많이 알아들으니
목욕시키기도 수월해졌어.
저녁에 내가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찾고, 뺨을 부비며 어르고 간지럼태우다
목욕통에 집어 넣고 보드란 살갗을 문대다가 또 문득,
둘째 키우는 재미 제대로 맛보지도 못하고 먼저 간 네가
또 떠올랐다.
계속, 이렇겠지.
서서히 엷어져가다 또 술 한잔 들어가면 생각나 가슴이 몹시 아릴테지
너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벗들, 오랫만에 만나면
눈물 떨구겠지.
허허로운 가슴들, 시간이 흘러가며 물기가 말라가겠지
네 사고 소식을 듣고서 정신이 잠시 나갔다가 돌아온다음
내 가슴에 차올랐던 감정은
견디기 힘든 슬픔 다음에 분노였어.
억울함이었어.
하느님이 계시다면 너는 너무 차례가 빠르다고 항의하고 싶었어.
하늘은 정말 영글디 영근 이들을 먼저 취하시는 건가. 그렇다면, 그게 하늘인가 싶었어.
바보같이, 기가 막힐정도로 충실하게
집단이 요구하고 시대가 네게 명하는 길을 긴 번민 없이 명쾌히 선택해왔던 네가
너무 답답했어.
"그런 선택속에서
네가 힘들어지고, 네 가족이 힘들어지고
네 일상이 팍팍해지면
네가 풍요롭고 넉넉한 가슴을 가진 이웃이기보다는
정의롭지만 늘 바쁘고, 그이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들어버리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면
그게 과연 민중을 위한 길일까, 병세야?"
젠장.
네놈에게
너 못지 않게 바보같고 빙충맞은 운봉이놈이랑 같이
여유있게 술 한잔 마실 기회가 찾아오면
그런 얘기 마음껏 가슴 열어두고 하고 싶었어.
정말 하고 싶었어. 병세야.
너는 함덕사람이지만
네가 살던 마을, 네 고운 심성을 닮은
아리따운 이름 애월,
해질녁 그 고운 해안선길로
네가 나를 이끌어 가던 그 여름날 저녁에
많은 말 주고 받지 않았어도
네 집에 날 들여 재우고 싶었던
네 마음,
옳고 해야하는 일 말고,
딴청도 피우고 조금은 개인적인 일 위주로 생각도 해보고
약간은 틀에서도 벗어나 상상력도 발휘해보고
조금은 일탈도 해보고,
- 재작년 겨울 네가 덕준이 형 전화받고 술마시고 땡깡피웠던
동문로터리 거리에서처럼 -
그런 걸 나랑 나누고싶었던 거 아니?
그 맺혔던 이야기들, 내가 너랑 미처 풀지 못했던 사연들
너는 땅에 묻고, 나는 이제 어찌 다 가슴에만 묻어두고
그냥 잊어가며 살아가지?
병세야. 병세야.
네 이름을 여러번 부르니, 또 눈물이 나려고 한다. 아직도 네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네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전과 똑같이 일하고, 먹고, 싸우고, 욕하고, 똥을 싸고, 사랑하며 살고 있다.
네가 가던 날, 그 며칠 후 까지는 하루에도 여러번 눈물이 나고 가슴이 아팠는데
요즘은 하루에 한번쯤 네 생각이 나고, 가슴이 아프다.
유행가 가사마냥, 이렇게 네가 서서히 잊혀진다는 사실이 더욱 괴롭다.
네 추모 블로그를 보고, 너에 대한 내 기억을 찬찬히 정리해봐야지, 생각했는데
생각이 글로 쉽게 옮겨지진 않는구나.
몇 달 전 컴퓨터 고장으로, 아마도 네 얼굴이 많이 들어있을
내 일년 반 제주 생활 사진첩 폴더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으니
더 네 존재가 내 머릿속과 가슴안에서 엷어지기 전에
서서히 시작된 단기기억상실이란 놈이 더 힘세지기 전에
네 기억을 글로 좀더 많이 남겨두어야 겠다.
어제 운봉이에게 전화를 받고, 네가 49재였단 얘기를 듣고,
내 자신이 좀 한심하긴 하다만, 오늘 바쁜 일과를 끝낸 다음
또 아무일 없던 것처럼 술을 마시기 전에 네 생각이 떠올라
글을 쓴다
너를 처음 본 건, 창옥이 선배님 선거때였지.
2006년 봄 대정에서.
이른 아침, 읍사무소 부근 선거사무소 앞에
근사하게 양복을 차려 입은 영화배우 뺨치게 잘 생긴 청년.
내 기억속에 들어 있는 너의 첫 인상이었지.
그 때도 너는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어. 예의 그 선한 인상으로.
그 때까지만 해도 설마 내가 너와 이렇게 가까와지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지.
6개월여가 지나서, 내가 서귀포에서 생활하게 되며
네 옆자리에 앉아 1년 반 시간을 함께 보내며,
우리는 참 많은 시간을 함께 했지.
네 똑부러지는 보고서와 다르게, 네가 잘 준비해놓은 유세차량과 다르게
늘 지저분한 네 자리가 일단 떠올라.
넌 늘 너무 일이 많았잖아. 나 또한 일을 쌓아놓고 하는 성격이라,
많은 이야기 나누지 않아도 네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지.
그래도 저 놈 좀 심하군.. 하며 널 지켜 보고 있자니,
가끔씩 날을 잡아 대 청소를 하더구나.
그런날이면 너는 네 자리뿐만이 아니라 사무실을 온통 뒤집어 놓고 청소를 하는데
가장 궂은 일인 화장실 청소는 자주 네 몫이었지. 네 몫을 자청했지.
늘 단정하게 차려입은 양복바지저고리 그대로 말야. 그 구정물을 바짓자락에 튀겨가면서.
일처리가 꼼꼼하지만, 일하는 속도는 별로 빠르지 않았던 너.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았을까. 너를 잘 아는 사람들은 짐작 했을까.
수많은 밤과 새벽, 회의자료를 준비하고 묵묵히 짜증내지 않고
오로지 혼자의 놀라운 힘으로 산더미 같은 실무를 준비하느라
토끼눈알이 되도록 지새웠던 너의 시간들을 말이다.
눈에 밟히는 도경이, 너의 안위를 언제나 노심초사 염려하는 지은씨의 떠오르는 얼굴을
너는 애써 지웠겠지.
아마 재작년 늦가을쯤이었을거야.
거나하게 술이 취한 나, 양마단지까지 올라가는 택시비를 아끼려 그랬던 것일까
새벽 2시쯤에 사무실 철문을 열쇠로 따고 들어갔는데
조명을 모두 다 꺼놓고, 무슨 모닥불 쬐듯 흐릿한 모니터 불빛에
네 얼굴만 환하게 비추인채
붉은 눈을 하고 너는 나를 보고 또 웃었겠지.
나는 나를 술 먹도록 내버려두고 혼자 바보같이 그 시간까지 일했던
별것도 아닌 실무를, 나눠 할 수도 있는 실무를 혼자 온전히 책임을 떠안았던
너를 보며 기가막히고, 속이 상하고, 네게 미안하고 네가 존경스럽고
복잡한 감정에 할말이 없었어.
나는 당 사무국장인 네게 늘 불만이 있었다, 병세야.
'불만'은 적당한 표현이 아니겠지. 왜 그렇게 일을 하는지 원망이었을거야.
좀더 정치적으로 일을 하지 않는 네가.
유일한 상근자인 네가 온갖 실무를 도맡아 처리하느라
정작 동으로 서로 남으로 북으로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못하는 걸 보면서
답답하기도 했고
술을 마시면 운전을 못하고, 운전을 못하면 집에 못가니까
그래서 사람을 아예 안만나버리나 싶어서,
덕준이 형이 제안해 우리는 너랑 운봉이랑 양마단지에 함께 합숙을 했잖아.
그래도 너는 일순위가 사람을 만나 술마시기.. 는 아니었던 것 같아.
시작부터 끝까지, 농민회 어르신들을 챙기는 일부터 스물 댓살 먹은 막내 당원들을 신경쓰는 일까지,
시당 소식지를 빼어난 아래아한글 편집 실력을 발휘해 직접 디자인하는 일부터
현애자 의원님 추석선물을 트렁크에 싣고 곳곳에 흩어져있는 잠재적 지지자에게 배달하는 일까지
오로지 온전하게 당을 책임지는 사람은
외로워도 너 혼자라는 각오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
빵구낼수 없다는 각오, 결코, 결코
창옥이 의장님 계시지만 어떻게 마음고생하고 계신지 네가 옆에서 다 알고 있었기때문에
육짓것들에게 완전히 믿고 맡길 수 없는 일도 있었기 때문에
너 혼자서라도 다 책임지겠다는 바보같은 의지였겠지.
도경이가 눈에 밟혀도
그런 너라서, 조직이 어디가 돌아가지 않는지
운동이 정체되는 아주 세세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권위주의가 우리를 좀먹고 있는 것인지
어떤 나태함이 우리를 뒤쳐지게 만드는지
잘 알고 있었을거야
한번도 얼굴 찡그려 벗들에게 싫은소리 할 줄 모르는 너였지만
참고, 이해하며 속이 답답했겠지
술 먹으면 늘 자는 행동으로 유명한 너랑 내가
그래서
어느 여름날
새벽 다섯시 반까지 함께 술을 마신적도 있었지
동문로터리 근처 투다리집
얼굴 이쁘장한 주인 아지망 있는 집에서
그런 얘기하며
서로 마주보고 졸기도 하면서 말이야
네 둘째 녀석 이름이 도훈이라 했던가? 지금 한창 재롱이 늘어갈 때지.
우리 둘째도 많이 자랐어. 요즘 말이 하루가 다르게 부쩍 늘고, 말귀를 전보다 훨씬 많이 알아들으니
목욕시키기도 수월해졌어.
저녁에 내가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찾고, 뺨을 부비며 어르고 간지럼태우다
목욕통에 집어 넣고 보드란 살갗을 문대다가 또 문득,
둘째 키우는 재미 제대로 맛보지도 못하고 먼저 간 네가
또 떠올랐다.
계속, 이렇겠지.
서서히 엷어져가다 또 술 한잔 들어가면 생각나 가슴이 몹시 아릴테지
너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벗들, 오랫만에 만나면
눈물 떨구겠지.
허허로운 가슴들, 시간이 흘러가며 물기가 말라가겠지
네 사고 소식을 듣고서 정신이 잠시 나갔다가 돌아온다음
내 가슴에 차올랐던 감정은
견디기 힘든 슬픔 다음에 분노였어.
억울함이었어.
하느님이 계시다면 너는 너무 차례가 빠르다고 항의하고 싶었어.
하늘은 정말 영글디 영근 이들을 먼저 취하시는 건가. 그렇다면, 그게 하늘인가 싶었어.
바보같이, 기가 막힐정도로 충실하게
집단이 요구하고 시대가 네게 명하는 길을 긴 번민 없이 명쾌히 선택해왔던 네가
너무 답답했어.
"그런 선택속에서
네가 힘들어지고, 네 가족이 힘들어지고
네 일상이 팍팍해지면
네가 풍요롭고 넉넉한 가슴을 가진 이웃이기보다는
정의롭지만 늘 바쁘고, 그이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들어버리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면
그게 과연 민중을 위한 길일까, 병세야?"
젠장.
네놈에게
너 못지 않게 바보같고 빙충맞은 운봉이놈이랑 같이
여유있게 술 한잔 마실 기회가 찾아오면
그런 얘기 마음껏 가슴 열어두고 하고 싶었어.
정말 하고 싶었어. 병세야.
너는 함덕사람이지만
네가 살던 마을, 네 고운 심성을 닮은
아리따운 이름 애월,
해질녁 그 고운 해안선길로
네가 나를 이끌어 가던 그 여름날 저녁에
많은 말 주고 받지 않았어도
네 집에 날 들여 재우고 싶었던
네 마음,
옳고 해야하는 일 말고,
딴청도 피우고 조금은 개인적인 일 위주로 생각도 해보고
약간은 틀에서도 벗어나 상상력도 발휘해보고
조금은 일탈도 해보고,
- 재작년 겨울 네가 덕준이 형 전화받고 술마시고 땡깡피웠던
동문로터리 거리에서처럼 -
그런 걸 나랑 나누고싶었던 거 아니?
그 맺혔던 이야기들, 내가 너랑 미처 풀지 못했던 사연들
너는 땅에 묻고, 나는 이제 어찌 다 가슴에만 묻어두고
그냥 잊어가며 살아가지?